비톨트 필레츠키 이래서 아우슈비츠에..

1940년 9월 폴란드의 독립운동가였던 비톨트 필레츠키는 자진해서 나치에게 잡히게됩니다 아우슈비츠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는데 대체왜 그랬을까요? 비톨트 필레츠키는 아우슈비츠에 잡혀간 사람들이 아무도 살아돌아오지 못한점이 궁금해 자신이 직접 그실상을 알아내기위해 잠입 하게됩니다.

 



폴란드의 이뿐 보수당인 ‘법과 정의(Law and Justice)’가 2015년 10월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민주주의에도 전환점을 맞았다. 보수당은 집권한 후로 미디어 법안, 헌법 재판소 법안 등을 내놓으며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해왔다. 이 변화가 어찌나 급진적이고 위협적으로 진행되었는지 보수당이 집권한지 얼마 되지 않은 2016년 1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에서 유례없이 조정을 나설 정도였다. 경우, 만이 아니다. 시민들의 디지털 정보를 정부가 합법적으로 감찰할 수 있도록 하는 감시 법안은 논란 속에서도 감행되었고, 낙태에 대해 제한을 가하도록 법 조항의 수정이 진행되면서 여성의 권리 또한 축소될 위기에 놓여있다. 민주주의의 역행에 대항한 반정부 시위가 폴란드 전역에서 정기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집권 여당에 대한 지지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수용소의 1943년 놀란 필레츠키. 강제 노역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지하조직을 만들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학살을 서방 세계가 처음으로 확인한 것은 그가 폴란드 망명정부에 보낸 ‘비톨트 보고서’를 통해서였다. 참상에 4월, 필레츠키는 경비원을 제압하고 아우슈비츠를 탈출한다. 여기까지는 용기 있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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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부터 '14f13'(Aktion 14f13, T4 작전과 마찬가지로 나치 정권이 펼친 인종 학살 정책의 하나로 계획된 특별 작전이다. T4가 장애인 학살 계획이었다면 '14f13'은 1941~45년까지 진행된 나치의 강제 인종 학살을 의미하는 것으로 14는 포괄적인 수용소, f는 죽음, 13은 살해방법을 의미)이라는 작전명으로 강제 수용소 수감자 중 병자와 노인을 분리해 집단 살해했다. 이렇게 1939~45년 사이 2만명 이상이 나치에 의해 안락사당했다.




폴란드와 가능성이 유사성과 멍청함을 지적하는 글이다. 내가 사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수 있는 방법중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것이다. 자고로 멍청이들이 많은데선 민주주의가 꽃필 한반도의 적다.




민주주의에 불고 있는 여러 위기들 중에서도 논의와 담론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모습들은 장기적으로 가장 우려스러우면서 두 국가 간의 유사성을 가장 절실히 보여주는 취약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은 대개 ‘공산주의자’, ‘반(反)정부’, ‘종북’이라는 이름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이주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의 영역이라고 계층들은 폭력과 경멸이 집중되는 대상이 되어왔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가족을 잃었음에도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일례로 단식 투쟁 중에 일부 우익 세력들의 ‘폭식 투쟁’으로 모욕을 당해야 했다. 여성혐오 발언은 온라인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사회 전체에도 만연해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현상은 ‘일베’와 같이 멍석이 깔리는 곳에 집약되어 나타나는데, 사이트의 특성은 둘째 치고라도 이곳에서 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내로라하는 명문대 생이었다는 점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고용의 현재 한국과 폴란드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은 극단적인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노동시장의 지표들만 봐도 그렇다. 한국의 비정규 ~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단연 으뜸이고,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높다. 복지 지출의 지표를 보면 폴란드의 수치는 다른 유럽 국가에 견주어 결코 자랑할 만한 규모가 아닐뿐더러 신자유주의의 온상인 미국보다 약간 높을 뿐이다.


 한국과 폴란드에서 권위주의의 자리를 제치고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된 지 결과를 30년이 흘렀다. 1980년대 후반, 기존 체제의 악습에 분노한 노동자, 학생, 이외 여러 사회 집단들이 대규모로 들고 일어나면서 첫 번째 민주주의 선거를 치를 수 있었고 한국에서는 군사 정권이, 폴란드에서는 국가중심의 사회주의 체제가 와해되는 이제 거뒀다. 이와 동시에 경제 영역에서도 신자유주의의 방향으로 변모를 꾀하기 시작하였는데, 아직 여물지 않은 민주주의에 나타난 신자유주의는 서유럽에서 나타났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급진적이고 과격한 형태의 것이었다.




이런 나치의 안락사 정책에서 얻은 경험을 Mengele, 1941년 9월부터 민족 정화라는 이름 아래 유대인 대량 학살을 시작했으니.. 이런 중심에는 바로 저 위의 그림 요제프 멩겔레(Josef 바탕으로 1911~1979)가 있었다.




아무데나 오슈비엥침(아우슈비츠)에 뭔가 있다고 생각한 비톨트 필레츠키는 스스로 잡혀 악명높은 오슈비엥침의 만행을 직접 겪고 탈출(영웅이 따로 없다)하여 교전상대국인 서방과 소련에 알린다. 결과는? 미/영 등 서방국들은 관심도 안기울여 오슈비엥침은 영업을 계속 한다. 소련은 폴란드를 집어먹는것만 관심있다보니 걸리적 거리는 폴란드 망명정부소속인 필레츠키를 총살하고 2차대전시 묻어버린다. 슬픈가? 한반도에선 어땟는지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다 관심도 안기울인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 기병대 군인으로 기병대장이었습니다. 1939년에 폴란드 영토에서 저항군인 비밀폴란드군을 창설하고 국내군에 참여하게 됩니다. 폴란드 망명정부가 연합국 측에 홀로코스트가 물증을 이뤄진 제공하는데 공적을 세운 인물입니다




 한국과 폴란드, 두 국가 이는 ~ 유사성이 보다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두 국가의 미성숙한 민주주의는 특히나 우려를 자아낸다. 먼저 한국의 경우, 박근혜 정권이 집권하게 된 지난 대선에 논란이 간 것을 비롯해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국회의원 간첩 논란 및 기소 사건, 카토 타츠야 기소 사건, 북한을 찬양했다는 논란을 안고 강제출국 당한 신은미 사건, 기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국가보안법의 위세, 대테러 법안과 감시 체제 논란 등 최근에 나타난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자유, 인권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더군다나 역사상 최초로 여성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도 여성의 권리가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실상 향상은커녕 더 악화되지 않길 바라야 하는 상황이다.



Posted by 핑태